결론부터 말하겠습니다.
"EPUB이 만화에 최적화되어 있지 않다"가 아니라 "최적화는 규격에 있는데 아무도 쓰지 않는다"입니다.
비슷하게 들리지만 뜻은 아주 다릅니다. 앞쪽이라면 포기하는 수밖에 없지만, 뒤쪽이라면 상황은 바뀔 수 있습니다. 하나씩 뜯어보겠습니다.
애초에 고정 레이아웃 자체가 만화를 위해 들어온 것입니다. W3C의 설명에서도 고정 레이아웃은 만화·아동서·잡지의 디지털화를 위해 구현되었다고 말합니다. 글을 위해 만든 포맷을 원래 용도가 아닌 일에 억지로 쓰는 상황이 아닙니다.
실제로 EPUB에는 컷 단위로 읽는 방식을 정의하는 규격까지 있습니다. Region-Based Navigation이라고 합니다.
그 규격은 컷 단위로 읽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만화·코믹·잡지에 중요한 요구사항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예시로는 컷이 여섯 개인 만화 페이지를 들어, 각 컷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순서로 읽는지를 보여 줍니다.
더 세밀하게도 갑니다. 컷 안에 영역을 중첩할 수 있어서, 말풍선 하나하나를 각각의 영역으로 다루는 것까지 설계에 들어 있습니다.
EPUB은 한 쪽에 이미지 한 장을 늘어놓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 휴대폰이 컷을 하나씩 짚어 갈 수 있도록 컷의 위치와 읽는 순서를 정의하는 것이 포맷의 표준 기능입니다.
여기가 핵심입니다. 현실에서 이 부분의 규격을 지원하는 뷰어 앱은 없습니다.
시사적인 사례가 있습니다. 페인팅 소프트웨어 Krita의 개발자가 실제로 이 영역 내비게이션의 내보내기를 구현해 봤습니다. 작업 자체는 두 시간쯤 걸렸고, 나온 EPUB은 검사를 통과했습니다. 규격대로 만드는 것은 정말로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같은 개발자가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 파일을 올바르게 표시하는 뷰어 소프트웨어가 존재하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입니다. 규격에 정확히 맞춰 만들어도, 그것을 읽을 수 있는 곳이 없는 것입니다.
"규격은 있는데 아무도 쓰지 않는다"는 말이 현실에서 뜻하는 바가 이것입니다. 창작자가 모든 것을 올바르게 해도 독자에게 닿는 경로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킨들에서 만화를 읽을 때 나오는 컷 단위 보기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EPUB 표준 기능이 아닙니다.
아마존에는 Panel View(Guided View)라는 자체 기능이 있고, 아마존 고유의 마크업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regionMagnification , targetId로 컷을 가리키고, ordinal 로 순서를 정합니다 — 전부 아마존 자체 규격입니다.
게다가 출판사가 컷을 전혀 표시하지 않은 경우에는 "Virtual Panels"라는 기능이 자동으로 작동합니다. 창작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마존이 페이지를 나누고 확대해 줍니다.
나란히 놓고 보면 이렇게 됩니다.
| EPUB 표준 | 아마존 자체 | |
|---|---|---|
| 컷 단위 보기 규격 | 있음 | 있음 |
| 지원하는 읽기 환경 | 거의 없음 | 있음 |
| 창작자가 표시하지 않아도 동작 | 아니오 | 자동으로 채워 줌 |
요컨대 만화의 컷 단위 읽기는 표준이 아니라 아마존의 구현 덕분에 존재합니다. 지금 상황이 그렇습니다.
표준을 꼼꼼히 지킨 EPUB을 만들었다고 해서 만화로서 잘 읽힌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반대로 아마존 환경에서는 파일에 아무것도 지정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읽힙니다.
"올바른 EPUB을 만드는 것"과 "만화로서 편하게 읽히는 것"은 이어져 있지 않습니다 — 만들면서 느끼는 그 찜찜함의 정체가 이것입니다.
세로 스크롤 작품 — 웹툰 — 에 대해서는 이 포맷을 변호할 수가 없습니다.
고정 레이아웃의 한가운데에는 미리 쪽으로 나눈다는 발상이 있습니다. HTML 파일 하나가 한 쪽에 대응합니다. 아래로 끊김 없이 스크롤한다는 개념 자체가 규격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로 스크롤 작품을 EPUB에 담으려면 반드시 어딘가에서 쪽으로 잘라야 합니다. 작품의 핵심인 끊기지 않는 흐름이 구조적으로 사라집니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포맷의 설계와 작품의 성질이 정면으로 부딪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적어 놓으면 암울하게 들리지만, 상황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현재 작성 중인 EPUB 3.4에는 다크 모드 지원이나 각주 표기의 표준화 같은 항목과 함께, 디지털 만화를 다루는 전담 팀이 있습니다.
EPUB 3.4는 2026년 7월에 후보 권고안에 이르렀고, 정식 권고는 2026년 10월 19일 이후로 예상됩니다. EPUB에서 만화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는 지금 국제적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현시점에서 현실적인 판단은 이렇습니다.
아마존은 여러분의 EPUB을 받아 자체 포맷으로 변환해 배포합니다. 컷 단위 보기 경험은 아마존의 장치에 맡겨져 있으므로, 표준의 컷 정의에 공을 들일 이유는 지금으로서는 거의 없습니다. 페이지 이미지 자체의 품질과, 제본 방향·쪽 순서 같은 기본을 제대로 맞추는 데 집중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고정 레이아웃 EPUB은 페이지를 올바르게 표시하는 일은 확실하게 해냅니다. 한 쪽에 이미지 한 장이라는 단순한 구성으로 유지하면 대부분의 앱에서 잘 읽힙니다. 컷 단위 보기는 포기하고, 대신 펼침면과 이미지 해상도에 정성을 들이세요.
애초에 EPUB이 맞는 그릇인지 한 번 멈춰서 물어볼 가치가 있습니다. 출간하려는 곳이 정말 EPUB을 원하는지 확인하세요. 이미지를 그대로 배포할 수 있다면 그쪽이 작품에 더 충실하고, 서점 제출에 EPUB이 필요하다면 EPUB으로 가는 겁니다. 목적에서 거꾸로 따져 보세요.
이미지 폴더를 고르면 제본 방향과 페이지 크기까지 정리된 고정 레이아웃 EPUB이 나옵니다. 가입도, 설치도 필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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